인도에서 만난 남자 - 23부

인도에서 만난 남자 - 23부

시베리아 0 358

인도에서 만난 남자 23








"제발 밥부터 먹고 가자. 케이 밥부터 먹자니까?"




"시간 없어요."






케이는 나의 절규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목을 잡아끈다. 현정이는 킥킥대며 따라오고.




조드뿌르는 잠시 한나절만 보내고 저녁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한단다.




케이는 싱긋 웃더니 기왕 조드뿌르까지 온김에 메헤랑가르를 봐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의 마음씀씀이가 반가와서 그래야지 라고 했더니 담배한대 태울시간도 주지않고 손목을 잡아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허겁지겁 서두르느라 아침도 못먹고 점심도 계란 두개로 때웠는데 이제 진이빠져 도저히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제발 밥부터 먹자니까?






"메헤랑가르!"






케이가 외친다.




현정이는 언제 샀는지 비스켓을 물고 오물대고 있다.








***






"네히. 우퍼해"






케이가 오토릭샤꾼을 다그친다.




멀리 메헤랑가르가 보이고 릭샤꾼이 버스정류장에서 릭샤를 멈추고 내리라고 하자




케이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 드러눕는다.






"Money."




" No. I wil not pay. 우퍼해."






릭샤꾼이 다가와 돈을 달라고 하자 케이는 더 가자며 돈을 내지 않고 버틴다.




주위로 인도인들이 몰려든다. 곧 우리는 인도인들에게 둘러 싸인다.




케이는 여전히 싱글거린다.






"케이 그냥 돈내고 걸어가자."






현정이가 겁이난양 고개를 숙여 케이에게 속삭인다.






"인도사람들 외국인들 구경하는 것 좋아해요, 별일 아니에요."






이봐 분위기가 별일 아닌게 아니잖아? 봐 저 위압적인 시커먼 얼굴들 하며.




내 머릿속에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안던 사포이의 폭동 등등의 위협적인 단어가 스쳐가고 있었다.






"Go to police station,:






케이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한 문장을 던진다. 모여있던 인도인들이 한두명씩 흩어진다.




케이는 싱긋 웃는다.






"Here is no police station,"




"Are you kidding me? police station is over there, i know."






릭샤꾼이 어눌한 말투로 여기에는 경찰서가 없다고 말하자 케이는 싱글거리며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릭샤꾼의 주눅든 검은 얼굴을 응시한다. 나도 케이의 시선을 따라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몰랐는데 검은 피부 사이로 주름살이 많이 있구나.




곧 릭샤꾼이 케이의 시선을 회피하며 쏘리라는 단어를 힘들게 꺼내놓는다.




릭샤꾼의 주눅든 얼굴에서 우두머리 다툼에서 패배한 수컷은 냄새를 풍긴다.






"별일 아니죠?"






케이는 싱긋 거린다.




릭샤는 거대한 성앞에 멈추고 우리는 릭샤에서 내려 돈을 계산한다.




릭샤꾼은 땡큐라고 말하며 릭샤를 돌려 왔던 길로 내려간다.






온 도시가 파랗다.




구름이 해를 가려 그늘이 생기면 그 아래에 위치한 부분은 짙은 파란색을 지어낸다.




마치 풍경화에 파란색을 덧칠하듯 구름은 바람따라 흘러간다.




메헤랑가르에서 내려다보이는 조드뿌르의 모습은 뭐랄까 중세를 배경으로한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블루시티죠. 이도시의 별명이."






케이는 이어말한다. 원래는 이도시의 피지배층과 차별을 두기 위해 자신의 집을 푸른색으로 칠했는데 지금에 와서




온 도시가 파랗게 보이게되었다고. 아름다운 풍경과는 다른 조금 씁쓸한 이야기다.




현정이는 여전히 비스켓을 오물거린다.








성벽에 기대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바람에취해 습관처럼 담배를 꺼낸다.






"금연이에요, 알잖아요. 타지마할에서도 아그라포트에서도 금연이었죠,"






쩝 실수다. 흥이나면 담배를 무는 습관이.




현정이는 여전히 비스켓을 오물거린다.






"현정아. 나도 하나만."




"어. 어떡하죠? 이게 마지막이었는데. 미리 말을 하지. 먹고싶으면. 난 아저씨 아니 아빠가 과자종류 안좋아하는 줄 알고."




"나는 효심깊은 딸이라 예의상 한번쯤은 권할줄 알았지."






현정이는 여전히 비스켓을 오물거린다.




나는 생각한다. 배가 고프다.






***






"부탁합니다. 형님들"






발단은 반항기처자에서 부터였다.




짐을 기차역 보관소에서 찾아 기차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한시간 반이나 남아있어 우리는 짐을 외국인 대기실에 둔 채 기차역을 쏘다니기도 하고 혹은 몰려드는




인도아이들에게 케이가 시현한 "구걸놀이"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피곤한듯 대기실에 앉아 여행자 가이드북을 보던 정민이가 책을 들고 케이에게 다가가 뭐라고 소근소근하더니




케이는 시계를 한번 보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정민이가 신이나 다른 반항기 처자들을 불러 뭔가이야기를 한다.




심상치 않은 냄새를 풍긴다. 여자일행들이 케이주위로 모여들더니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다.






본래 사람은 타종 타과의 짐승들에 비해 탁월한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나도 사람이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유려한 동작으로 회피한후 그들의 뒤에 붙어섰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양.




우리의 눈은 의자에 앉아 졸고있는 형님들에게 향했다.




케이는 그들에게 서서히 다가가 어깨를 두드린다.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영문을 모른채 잠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형님들을 뒤로한채 기차역을 나선다.








"우와 정말 맛있다."






이곳은 가이드북에 소개되어진 라시전문점이다. 기차역에서 조드뿌르시내 방면으로 10여분쯤 걸어오면




보이는 허름한 ** ** 이라고 독특한 맛의 라시를 판매한다.




라시를 즐기고 기차역에서 돌아오다 바나나와 사과를 샀다. 기차안에서의 먹거리다.




과일들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 곰곰히 생각하고서 깨닫는다. 라시는 요기꺼리가 되지 않는다.




잠시 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배가 고프다.






"아빠. 하나 드실래요?"






서른살 난 귀여운 딸 현정이는 비스켓을 물고 오물거린다.








"케이~!"






형님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다.




우리가 나갔다 온 동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했나 보다. 통찰력있는 형님들이시다.




케이는 말없이 형님들을 보며 싱긋 웃고는 배낭에서 나이프를 꺼내어 날을 유심히 살핀다.




케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짖는다. 그 미소가 내눈엔 잔인하게 비쳐진다.






"우와~!"




케이는 능숙하게 사과를 깍는다. 한번의 끊김도 없이 비단처럼 얇게 잘도 깍는다.




조신하게 앉아 왼손 새끼 손가락을 살짝 든채로 사과를 깍는폼이 영락없는 새색시? 이건 아니다.




여하튼 사과깍는 폼이 예술이다.






"드세요."




케이는 예의바르게 최연장자인 형님들에게 사과조각을 내민다. 칼에 사과를 꽃은채.






"맛있어요?"




케이가 싱긋 웃는다. 왠지 묘한 박력이 느껴진다.






****






"곤란해요."






기차를 타니 우리칸 창가쪽에 이쁘장한 백인여성 두명이 자리를 잡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우리 아저씨 트리오와 어느새 끼어든 인범씨가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척 미모의 늘씬하고 풍만한 그녀들의 자태를 눈으로




훔쳐보느라 바빴다.




기차는 어떤 시골역에 잠시 정차했다. 형님들이 서둘러 창가를 돌아다니며 기차밖을 살핀다.




케이가 홀로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짜이와 담배를 음미하고 있다.




형님들은 호들갑을 떨며 케이를 연호하며 달려간다. 형님이 뭐라고 말할려는 찰나






"곤란해요."






케이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뭐야 케이 너 인종적인 열등감이 있었던 거야? 왜 안돼? 우리가 길이와 굵기가 뒤져서 그렇지 그 강도와




지속적이 면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는다고."




형님들이 케이를 슬슬 구슬리는 듯 졸라대기 시작한다.




케이는 슬쩍 옆으로 눈을 돌린다.






"이스라엘 애들이에요,"






케이의 시선을 따라가니 늘씬한 그 여자들이 벤치에 걸터앉아 헤픈 웃음을 흘리며 담배를 피워댄다.






"대마초에요. 저거"






우리는 눈이 똥그래진다.




대마초, 마약. 중독. 신문 기사상의 고개숙인 연예인들. 범죄. 사회의적. 금단증상....




수많은 단어와 이미지들이 휑한 바람을 따라 우리 사이를 스쳐지나간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여자도 군대를 가죠. 그곳의 군대는 우리나와 달라서 언제나 전쟁과 테러와 총성 그리고




죽음이 멀리있지 않아요. 그래서 항상 정신적인 불안속에 생활하죠. 마약도 하고 미친듯이 섹스도하고.




하나의 생존방법이죠. 정신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들은 말이 없다. 케이는 짜이를 한모금 마시고 담배를 한모금 빨아당긴다.






"위험해요. 저 애들은."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경적 소리가 들린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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