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앞 둔 미스 김 - 13부 (완결)

결혼 앞 둔 미스 김 - 13부 (완결)

시베리아 0 359

결혼 앞 둔 미스 김 (14) 완결


혼자된 사람의 몸부림 쯤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주연의 행동은 내 생각보다는 너무 앞섰다.




주연은 마치 성해방의 주역이 된 양 나를 요구했다. 그날 이후 나는 주연의 등쌀에 행복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 했다.




남편으로 부터 배신 당한데다 40이 다 되어서야 성에 눈을 떴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녀는 남편으로 부터 받은 상당한 위자료를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이 없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즐길까를 연구하는 것 같았다.




주연은 확실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예전보다(이혼전) 훨씬 밝아졌고 긍정적이었다. 섹스를 자주 해서 인지 얼굴도 훨씬 젊어보였고 이뻐졌다. 그런 주연을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선지 거의 매일같이 그녀는 내 주위에서 맴돌았고 나 역시 그녀 옆이 편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주연은 황당한 제의를 했다.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자는 것이다. 알래스카 크루즈는 7박8일이 걸리는 일정인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내게는 아내와 회사 양쪽에 충분히 납득시킬 만한 명분이나 핑계가 없었다.




그런 고민을 늘어놓자 주연의 말이 걸작이다.




"철수씨 내가 사업체 하나 마련해 줄께"


"뭐라고!"


"적당한 비즈니스 하나 사준다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부담되서 싫어"


"그럼 동업하면 되잖아"


"......."


"그러잖아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네. 혼자 하는게 부담스러웠거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게도 그리 나쁜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력에다 내가 가진것 조금 보태면 그럴듯한 사업체 하나쯤 충분히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자꾸 먹어가는데 언제까지 직장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도 느끼고 있었고. 내게는 기회인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니 그렇게 여겼다.




결심을 굳히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사장은 얼굴이 시뻘게 지더니 부족한게 뭐냐고 묻는다.


"자네가 없으면 회사경영에 엄청난 지장이 생기는데...절대 안돼" 사장은 정색을 하고 사표를 반려하려 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그렇다면 평소에 잘하지라는 냉소만 보낼 뿐이다. 사람이란 그렇게 간사한 동물인가 보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나 역시 속물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한달동안 내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그만 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자 사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선 당장 나오지마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10여년동안 다닌 직장에서 나는 벗어났다. 집으로 가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자 한테 빠져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부터 <이혼녀 구워 삼아서 내 뱃속을 불리는 인간 말종 같은 놈>....<과연 제대로 한 판단인가> 등등등




아내를 앉혀놓고 사표를 냈다는 말을 했더니 아내는 금새 울상이 되서 언성을 높인다. 나는 친분이 있는 사람과 동업을 하기로 했다고 겨우 진정을 시키고 곧 사업체를 알아보러 한 일주일정도 뉴욕을 다녀와야 겠다고 말했다.




그런 난리를 치루고 주연과 나는 알래스카로 향했다. 시애틀에서 출발, 앵커리지 까지 갔다가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 알래스카 크루즈는 정말 환상적이다. 여행은 그 자체가 소풍가는 어린아이 처럼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데 알래스카를 호화 유람선을 타고 간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주연은 동업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두번째로 비싼 객실을 구입했다. 1인당 3천여달러라는 거금을 주고서. 유람선의 직원들도 우리가 비싼 객실을 이용해선지 대우가 확실히 달랐다. 3일째 되는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닷바람을 쐬자며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이 귓전을 스친다.




아까부터 뭔가에 쫒기듯 하던 주연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불쑥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냈다.




"나 임신했어"


"뭐. 뭐라고 했어 지금"


"나, 자기 아기 가졌다고...."




아찔하다. 임신이라니. 이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선배와 이혼한 주연은 지난 몇달동안 나를 만나면서 임신을 원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사업을 사주겠다거나 동업을 하자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확실하게 붙잡아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녀에겐 재산 따윈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오로지 자기가 낳은 아기만 있다면.




정신이 얼얼하다.


한편으론 크게 이용당했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한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을 안겨줬다는 자긍심도 있고...무척 혼란스럽다.




"날 사랑은 한거야?"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말없이 날 끌어안으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철수씨, 여자를 그렇게 모르겠어요? 사랑하지 않은 사람의 아기를 원하는 그런 여자도 있나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비록 우리 만남이 짧았고 정상적이진 않았지만.........아마 그래서 나는 당신을 더 절실히 원했는지도 몰라요................그리고 당신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아기를 줬잖아요. 아니 우리의 아기.............나 잘 할께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앞으로 지켜보기만 하세요. 그렇다고 당신을 구속하진 않을 거예요. 함께 살아달라고도 않을께요........ 그저 서로 보고플 때 만나줘요. 너무 그립지 않게만 해 줘요. 아기도 가끔 아빠를 찾을 때 그때 그냥 달려와 주기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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