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남자 - 11부

인도에서 만난 남자 - 11부

시베리아 0 365

인도에서 만난 남자 11








"아저씨?"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을께."








놀란듯 바둥거리던 은혜에게 내 비참한 심정이 조금은 전해졌는지 조용히 내등을 토닥거린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듯 포근함에 젖어있는 내 귀로 은혜의 장난스런 말이 들린다.








"그러게 엄마가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 아기 놀랬지? 그래 그래."








따뜻하다. 은혜의 말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숨결이 내 귀를 간지럽힌다.




풋. 이게 뭐람. 나름대로 한 집안의 가장이며 노련한 사회인이라 자처하던 내가




열 아홉난 어린 처자에게 마치 아기처럼 위로를 받고 있군.




이거 남새스러워서 얼굴이나 들고 다닐 수 있을까?




흠 이제 이런 불측한 사태를 무마시켜야 겠구만. 좀더 이렇게 있고 싶지만.








"왜 여기서 혼자 담배피고 있어? 다 큰 처자가 청승맞게시리."




"뭐 좀 답답해서요."




"케이는?"








뻔하다. 이 녀석이 답답해 하는 이유가 케이 밖에 더 있으랴.




케이의 방에 눈을 슬며시 흘기자 은혜는 고개를 절래절래 젖고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다.




빠알간 불씨가 한껏 위용을 자랑하다 다시 사그라든다.




매캐한 담배연기와 함께 은혜의 음성이 흘러 나온다.








"나 너무 강한 암시에 빠져 버렸나 봐요. 아니 이제 암시고 뭐고 그딴 소리 아무 의미 없어요.




나 케이가 너무 좋아요. 웃기게도 만난지 며칠만에 그에 대한 욕심이 생기네요.




그가 의미없이 짖는 미소에도 가슴이 떨려오고 그의 별 의미없이 하는 손짓 하나하나에




내 몸이 절로 움찔움찔 거려요. 이런거 좋아한다는 거 맞죠?"






이 어린 처자의 적나라한 고백에 삼자임에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벌렁거리다 못해 철썩 철썩 내려 앉는다.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실은 생각만 든다.






"내가 케이 불러다 줄께."




"아뇨. 그러지 마세요."




"왜?"




"지금 민경이 언니가 케이방에 있어요."






은혜는 싱긋 웃고는 개의치 않는 다며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민경이가? 이게 신경쓰지 않을 일인가?




저 발정난 개새끼 같은 케이놈이 온 처자 가슴에 쪽바리들이 백두대간에 말뚝 박듯




큰 대못을 다발로 찍어 박고 있는 판국에.




은혜의 미소가 너무나 처연해 보여 내 가슴을 콕콕 찔러댄다.




은혜의 눈은 여전히 맑은 데 내 눈에선 물막이 차오르는 것 같다.






"술이나 한잔 해요. 델리에서 케이 몰래 꿍쳐둔 술이 있어요."




"그러자."












인도산 위스키는 맛이 정말 없다. 마치 가그린에 보트카를 탄듯한 맛이랄까?




그나마 앞에 앉아 실실거리는 은혜를 안주삼아 기분좋게 마시고 있다.






"아저씨는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참 편하고 뭐 때로는 변태 중년의 음흉함이 드러나지만요.




어. 자꾸 가슴 훔쳐보지 마요. 아저씨 보라고 나시 입은 것 아니에요."






은혜가 술기운에 찬 음성으로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변태 중년이란 핀잔 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속이 쓰려오는 듯 한다. 왜?






"나는요 사춘기가 없었어요.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에 눈물이 핑돌기는 커녕 청소할 생각에




한숨만 푹푹 쉬어 댔죠. 헤헤."






너를 보니 그럴만도 하다.






"연예인이나 인근에 잘 생겼다는 누구를 봐도 뭐 그렇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은혜는 담배를 한모금 빨더니 눈을 감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대학에 들어가 두어달 동안에 많은 커플들이 생기는 것을 봤어요.




서로 서로 챙겨주고 밥도 같이 먹고 다정한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더라구요.




뭐 저 좋다는 선배 동기 몇명이 있긴 했지만 딱히 이사람이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






은혜가 잔을 비우자 나는 급히 잔을 채워준다.




고약한 성격이구만. 그렇게 줄듯 안줄듯 하는 여자가 순진한 총각 애간장을 긇이지.






"내 생일 파티에서 칠배주를 마셨어요. 삼배주가 아니냐 니까 칠배주를 해야한다고 우겨서




마시긴 했는데 곧 필름이 끊겼나 봐요. 정신을 차리니 선배의 자취방에 알몸으로 선배와 나란히




누워 있었죠."






이런 개같은 자식. 순진한 처녀를 술을 먹여 탐하다니. 씨발새끼. 욕지기가 속에서 솟아오른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담담히 이야기를 하는 은혜를 보며 괜히 내가 미안해 졌다.




우리나라 도둑심보를 가진 수컷들을 대신하여 내가 사죄하마.






"뭐. 처녀성을 잃은 두려움이랄까? 선배도 나름대로 친절하고 후배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사람이어서




그냥 그렇게 사귀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가끔 선배가 원할때 섹스도 하고.




그러다 한달 쯤 전에 그 선배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그만 만나자고 그러더라구요.




나에게 아무리 마음을 줘도 나의 마음을 도통 알수가 없어 다른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뭐 그냥 무덤덤 하더라구요. 화도 나지 않고. "






그녀는 싱긋 웃는다. 나라면 좋아하던 안하던 배신을 당한 입장에서 화는 났을 텐데.






"선배가 묻더라고요. 질투나 화가 나지 않냐고. 선배는 체념하는 어투로 사실은 다른여자가 생긴것이




아니고 군대에 간다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의 마음을 알고 싶어 연극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유치한 기분에 테이블에 놓여있던 포크로 선배의 손틍을 힘차게 찍어 버렸죠.




나도 선배랑 섹스할 때 그만큼 아팠다고. 손이야 치료받으면 낳겠지만 내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이거 과격한 처자 일세. 나도 조심해야지. 언제 포크로 찍힐지 모르니 . 아 ! 젓가락도 위험하군.






"선배가 그러더군요. 나는 평생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할 여자라고.




나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싶었어요.




지금 케이에 대한 내 마음이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은혜는 그래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궁금해서 계속 되물어 봤나 보다.




왠지 기분이 비참하다. 감정적이 되는걸 보니 나도 술기운이 올라 오려나 보다.






"아저씨는 참 편하고 좋아요. 이렇게 속도 털어 놓을 수 있고. "






화장실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술기운이 올라온다.




가그린맛 위스키라 방심했나 보다. 이거 위험한걸.




술기운을 달래느라 위를 보고 목을 푸는데 선풍기는 멈춰있고 천장이 돌아간다.




은혜의 음성에도 취기가 느껴져 아련히 들려온다.






"케이를 처음 보았을때.........케이는...........케이는..............케이는.....................




..............아저씨는 참 좋은 사람............"








씨발 계속 케이. 케이. 케이. 거리지 말란 말이야.




너 계속 그 개새끼 이름 부를래?




나도 마냥 좋은사람이고 싶지많은 않아.




나도. 나도. 나도.




은혜에게 다가가는 내 걸음걸이가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케이 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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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갈증으로 눈을 살며시 뜨고 침대 맡에 둔 생수병을 집어들고 한모금 들이킨다.




사방이 어둡고 고요하다. 선풍기의 삐걱대며 돌아가는 소리마저 나지 않는다.






"정전인가?"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라이타를 켠다.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아 불을 붙이려는 순간 침대 귀퉁이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은혜가 불빛에




드러난다. 다리사에에 정액이 달라 붙어있다.






머릿속으로 기억을 더듬는다. 머릿속이 멍할뿐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손가락사이로 담배연기가 타고 올라온다.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내 인기척을 느낀건지 아니면 아니면 담배연기 때문인지 은혜가 눈을 뜨고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나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말없이 옷을 입는다.




나도 따라 옷을 입는다.




주머니를 뒤져 오루피짜리 동전을 내게 내민다.




담배를 곽채 주자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인다.




곧 쓰러질것 같이 위태위태해 보이는 은혜의 그 모습에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요한 침묵과 소리없는 인기척이 나를 책망하는것 같아 죽고실은 마음만 가득하다.




차라리 울고 때리고 악을 쓰면 뭐라고 사과라도 할 텐데.






담배를 다 피자 은혜는 말없이 방문을 열고 나간다.




은혜의 뒤를 따라가 안쪽 문고리를 잡는다. 은혜는 바깥쪽 문고리를 잡고 문을 닫으려고하는 찰나다.






반쯤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은혜의 음성이 들린다.






"무슨일이 일어 난 건지 모르겠어요.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아요. 이 문이 닫기는 순간 없었던 일로 했으면




좋겠어요. 아저씨도 술에 취해 기억못할 거라 생각해요. 아직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요.






그러고는 살며시 문을 닫는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내 손은 힘없이 저항을 멈추고 문은 내앞으로 다가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은혜와 나사이에 벽이 생긴걸 실감한다.






문에 기대 담배를 태우려는 순간 밖에소 은헤의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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