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프러포즈 - 단편

마지막 프러포즈 - 단편

시베리아 0 464

담배 연기가 답답한 속을 태워 하늘로 사라진다. 콜록. 콜록. 갑자기 터진 기침에 담배를 비벼 껐다. 후,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 보다 일어난다. 베란다의 정원을 지나 거실로 가니 그녀가 보인다. 어느새 아줌마가 되어 버린 나의 아내. 탁자에 발을 떡하니 올려놓고, 소파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던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연홍빛 입술을 벌렸다.




“집에서 좀 피지 말라고 했지? 안 피우더니 요즘 왜 그래?”




저렇게 툴툴거리는 모습이 예쁘다.




“그냥, 좀 피자. 콜록. 콜록.”


“그렇게 기침하면서 뭔 담배를 피워? 친구들은 남편이 금연했다고 자랑하는데.”




그녀가 말하는 그 순간, TV에서는 키스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를 쳐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키스도 안 할 텐데 상관없잖아?”


“뭐?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진담이야. 아줌마하고 누가 키스하고 싶겠어.”




끝이 없을 것 같던 정적을 TV에서 들려오는 뺨 맞는 소리가 깨웠다. 그녀를 더는 쳐다보기 힘들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말없이 쳐다보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히며, 그녀와 단절된다. 침대에 무거운 몸을 던졌다. 그녀와 잠자던 침대가 너무 넓었다. 오지 않는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고, 또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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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담이야, 아줌마하고 누가 키스하고 싶겠어.”




탕! 하고 쏘아진 그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가슴에 박아 놓고, 미안하다고 안 해? 그렇게 무심하게 보지 말고. 그는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기만 하다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해? 당장 따라 들어가 드라마처럼 따귀라도 한 대 시원하게 칠까? 복잡한 머리에 머리칼을 헝클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줌마라고? 머리를 내려 날 내려다보았다. 헐렁한 흰색 면티에 회색의 칠보 면바지. 그 속으로 만져지는 살집. 그래, 당신 말대로 내가 요즘 관리를 안 하긴 했어. 그런데 당신은 뭐, 아저씨 아닌가. 나도 아저씨랑은 키스하고 싶지 않다고. 그가 들어간 방을 노려보고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미진씨?”


“네, 네?”




며칠 전 일을 생각하다 정신을 차리니 코앞에 점장이 서있었다. 언제 온 거야? 정말 귀신이라니까. 어휴,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정신을 다른데 팔고 있었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일부터 크리스마스 준비해야 하니, 재고 조사 좀 해주세요.”


“네, 알겠어요.”




요즘에 근처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다른 아웃도어들 때문에 마귀가 예민하다. 그래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수첩을 챙기고 매장을 돌면서 빈 옷들과, 몇 장 안 남은 옷들을 확인해 창고로 들어갔다.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인 옷들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구나. 그러면 뭐해. 이번에는 혼자 쓸쓸하게 보낼 텐데. 며칠 전부터 이어진 한랭전선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후로 밖에서 먹고 들어왔다며 집에서 밥도 안 먹고. 휴, 일단 빨리 끝내고 보자. 수첩을 보며 옷들을 찾고, 재고가 없는 건 따로 체크했다. 있는 옷은 다 찾아 창고에서 나갔다. 매대에 옷들을 걸고, 점장에게 재고가 없는 옷들이 적힌 수첩을 주었다. 저녁이 되어가니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목도리를 둘렀다. 점장은 손님을 상대하느라 바빠 저녁 알바에게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빵빵한 엉덩이가 날 반긴다. 새빨간 베스파. 125cc 클래식 오토바이인 섹시한 베니에 올라타고 분홍색 헬멧을 썼다. 오늘은 결판을 내고 말 거야. 동동거리는 베스파의 배기음에 맞춰 심장이 두근거렸다. 출발하니 곧 시원함을 넘어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으드드, 몸이 떨린다. 베니가 섹시하긴 하지만, 겨울엔 좀 아니라니까. 정말 딴 놈으로 갈아탈까 보다. 좀만 달리니 가까웠기에 금세 집이 보였다. 잠시 근처 편의점에 들러 수입 맥주와 안주를 사 집으로 향했다. 그가 좋아하는 아사히와 내가 좋아하는 호가든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몸을 씻었다. 감긴 눈 위로 따뜻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물줄기는 몸을 두드리며 피로를 씻어갔다. 촉촉이 젖은 몸을 닦고, 고심해 섹시함을 강조하기 위해 속옷과 원피스를 검정으로 맞춰 입고 선홍빛으로 입술을 물들였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남편이 올 시간이 되어간다. 식탁에 나초와 땅콩 등 마른안주를 접시에 담고, 복숭아도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기다리니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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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가 보였다. 붉은 조명 아래에 있는 그녀를 보자마자 가방을 당장 던져버리고 안아 방으로 가고 싶었다. 얼마 전 아줌마라고 했던 걸 철회하고 빌어야 할 정도로 그녀는 아직도 매력적이었다. 날 요염하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무덤덤하게 방으로 향했다. 그런 내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씻고 와. 기다릴게.”


“그래.”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답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그녀가 기다릴 걸 뻔히 알면서 천천히 씻었다. 샤워기에서 내리는 물에 몸을 맞기고,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물기를 닦고, 추리닝을 입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몇 분을 보내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를 보니 아까와 달리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표정을 푼 그녀가 입을 연다.




“오랜만이지?”




난 고개를 끄덕이고 캔을 따 마셨다. 이렇게 그녀와 단둘이 맥주를 마신 건 꽤 오래됐지. 그녀도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당신 요즘 너무 이상해, 무슨 일 있는지 말해 봐.”




맥주를 머금은 그녀의 선홍빛 입술이 반짝이며 유혹한다. 순간 유혹에 빨려들 뻔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 말없이 담배 한 대를 끝까지 피우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제 안 끌려. 식어버려서 그런가, 이제 널 봐도 여기가 뜨거워지지 않아.”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한동안 말을 내뱉지 못하다 힘겹게 꺼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바람이라도 피게?”


“그것도 좋겠네.”




맥주를 마시고,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면, 네가 다시 이십 대로 돌아가면 다시 좋아질지도 모르지.”


“뭐? 나랑 장난치는 거야?”


“장난 아니야. 처음 만난 대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좋겠지.”


“너, 너 정말! 부모님도 대학도 버리고 너랑 결혼한 건데, 네가 이럴 수 있어?”




당연히 알지 그래서 정말 미안하다. 미진아. 그러니 다시 시작해.




“그래 내 책임이다. 다시 대학가.”


“이 나이에 다시 가라고?”




그녀는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고는 맥주를 마셨다.




“서른한 살밖에 더 됐나? 아줌마 모습 꼴 보기 싫으니 제발 좀 가라.”


“흥, 계속 놀리면 내가 못 갈 줄 알지? 내년에 바로 갈 거야.”


“그래, 제발 좀 가라.”




그녀는 남은 맥주를 단번에 마시고는, 씩씩거리며 한 캔을 더 가져와서 마신다. 난 그런 그녀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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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발 좀 가라.’




남편, 아니, 그놈의 말이 아직도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났는데. 뭐, 덕분에 독기 품고 운동했더니 두 달 만에 이 정도 뺄 수 있었잖아. 헬스 다니는 동안 무시하기만 하던 그놈 때문에 내가 정말……, 휴, 말을 말아야지.




“미진아, 이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음, 보자. 어쩜! 역시 몸매가 되니깐. 옛날 모습 나오는데?”


“정말?”


“네가, 애들 다 잡아먹지 않을까 걱정된다.”




수진의 말에 유쾌해졌다. 이 옷을 사도 괜찮을까 했지만, 그놈을 생각하니 금세 걱정이 사라졌다. 그에게 복수라도 할 겸, 수진과 함께 섹스어필할만한 옷들을 더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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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예뻐졌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헬스장을 끊고, 매일 나갔다. 그런 그녀를 보며 중간, 중간 툭 내뱉었다. ‘열심히 할 필요 있어?’, ‘그런다고 그때로 돌아가겠어?’, ‘그냥, 포기하지.’같은 무심한 내 말에 그녀는 악착같이 운동했다. 1월에는 일도 그만두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늦은 시간에 들어가면 항상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봄이 되고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예전의 몸매가 되어 있었다. 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간 그녀의 모습을 보면, 하루하루가 유쾌했다. 동물원에 갇혀 조용히 지내던 그녀가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던 그 시절, 설원의 여우로 돌아간다는 게. 이제 새빨간 베스파처럼 달아오르는 그녀에게 묶여있는 목줄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




“찬수냐? 이번 주 어때? 걱정 말라니까. 콜록, 큼, 아니다. 그래, 괜찮아, 금요일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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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보내는 캠퍼스 생활이 즐거웠다. 다행히 학생들이 날 아줌마로 보지 않고, 또래인 줄 알았다며, 언니, 누나로 정겹게 불러주며 다가왔다. 이십대들과 지내다 보니 나도 이십대가 된 것 같이 젊음이 솟아났다. 수강신청을 오랜만에 하다 보니 처음엔 고생했지만,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수업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소나기 지나가며


외딴 어느 집 처마 밑에 품어 준


열서넛 남짓


나일론 옷 다 젖어 좁은 등허리뼈 비쳐 나는


소년, 처연한 머리카락


서 있는 곳


그 토란잎 같은 눈빛이 가 닿는 데


그 표정 그 눈빛이 자꾸만 가는 데


그런 데에 닿을 때 되었는데,……,




오늘은 공부에 집중되지 않아 좀 뒤쪽에 앉았더니, 앞에 앉은 학생들이 잘 보였다. 수업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꾸벅꾸벅 조는 학생,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학생. 훗, 그러게, 시를 제대로 느끼고 읽는 건 너무 어렵다. 장석남의 소나기를 학생이 읽은 뒤 교수님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교재를 읽어나갔다.




“어떤 강연에서 사랑과 연민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청중들이 내놓은 대답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랑이 여명이라면, 연민은 일몰’이라는 비유였어요. 여명과 일몰은 둘 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현상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지요. 빛이 어둠을 뚫고 피어나는 것이 여명이라면, 일몰은 빛이 어둠에 묻히며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이, 사랑과 연민은 타인과 하나 되는 감정을 동반합니다……”




사랑이 타인과 하나 되는 거라면, 난 언제부턴가 사랑을 잊었다. 우울한 하늘처럼 울적한 마음이 가슴을 흔들었다. 앞을 보니 창가에 혼자 앉은 남학생이 다른 책을 보고 있다. 저 애 이름이 뭐더라? 아, 맞다. 하진수였지. 무슨 책일까? 나도 예전에 수업시간 때 몰래 로맨스 봤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책을 안 보고 살았네. 나도 한때는 문학소녀였는데, 풋. 그렇게 웃으며 수업시간을 빈둥댔다. 그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책에 빠져있었다.




“언니, 내일 봐요.”


“응, 잘 가.”




입구에서 헤어져 베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싱그러운 녹음같이 퍼지는 젊음 속에서 걸어가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멈춰 섰다. [사랑, 로맨스가 필요해] 제목이 내 눈을 확 끌어당겼다. 두 달 남은 단편 소설 공모전에 너무나 끌렸다. 울적한 마음 때문일지 몰라도, 충동적인 마음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한 달이 지났는데 학교 도서관은 처음이었다. 앞 학생을 따라 학생증 바코드를 인식하고 대출실로 들어갔다. 어떤 걸 쓸까. 머릿속에서 지금껏 봤던 드라마가 파라락 지나갔다. 승강기를 타고 4층 인문과학자료실에 들어갔다. 컴퓨터에서 소설 쓰기를 검색하고, 책 청구기호를 출력해 서고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하진수다.




“안녕하세요?”


“으응,




나는 하진수에게 인사하고 책을 찾았다. 이게 어디 박힌 거지. 처음으로 책을 찾다 보니 책이 보이질 않는다.




“이게, 어디에 있지.”


“어디 좀 봐요. 이거면, 저기네요.”




진수는 내가 찾는 책을 간단히 찾았다. 서고 제일 상단에서 책을 뽑아내는 그의 모습을 보니 왠지 더 커 보였다.




“키 크네.”




나지막이 혼자 말한 게 들린 건가, 그가 해맑게 웃는다. 순간 그 웃음에 멍해졌다.




“여기 있어요. 소설 쓰시려고요?”




역시 이런 건 들키면 쑥스럽다.




“별건 아니고, 공모전이 보여서 한 번 써보게.”


“혹시, 사랑, 로맨스가 필요해 공모전이에요?”


“응, 너도 봤나 보네.”


“네, 저도 해보려고 하는데 로맨스는 처음이라 감이 안 잡히네요.”


“다른 장르는 써 봤나 봐?”


“조금요. 근데, 아직 초보예요.”




그도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데 수업시간 외에는 처음 대화해 보네.”


“제가 다른 애들하고는 별로 안 친하죠. 하하.”




그러게 왕따는 아니고 아웃사이더인가.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소설가는 글을 쓰기 위해 이별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행복하면 글을 못 쓴다든가. 그 말에 꽂혀서 친한 애들이 복학하기 전까진 이렇게 혼자 있는데, 이것도 요즘엔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떤 시인은 사랑을 해봐야 한다고. 아, 죄송해요. 민망하게 궁상떨었네요. 누나는 스토리 어떻게 할지 정했어요?”


“아니, 아직. 로맨스 책 좀 몇 권 빌려가려고. 넌?”


“저도 아직.”




안 그래도 혼자 쓸 수 있을지 고민됐는데 잘 됐다싶었다.




“그럼, 같이 의논하는 건 어때?”




내 말에 그는 반색하며 답했다.




“저야, 감사하죠. 누나.”




커피숍에 향하기 전 로맨스 책을 몇 권 빌리고, 정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모카와 그가 시킨 카페라떼가 나오자 본격적으로 소설 얘기를 나누었다.




“스토리와 캐릭터는 천천히 생각해보고 그전에 수위는 어느 정도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키스 정도야 넣어줘야 할 테고, 섹스도 넣어줘야 할까요?”




카페모카를 한 모금 마시고 있던 나는 ‘섹스’라는 원색적인 단어에 커피를 뿜을 뻔했다. 다행히 진정하고, 이런 얘기를 일상대화처럼 내뱉는 그를 보며 날 놀리나하며 그를 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기에 주변을 힐끔 쳐다보고 담담히 말했다. 소설 얘기니 부끄러울 거 없어.




“그거야 쓰는 사람이 마음~껏. 하면 되지 않을까? 야설로 넘어가지만 않는다면야 상관없겠지.”


“어휴, 전 큰일이네요. 요즘 연애를 안했더니 로맨스는 백지에서 커서가 움직이질 않아요. 누나는 잘 쓸 수 있겠어요. 로맨스가 현재진행형이잖아요.”




그 말에 아직은 결혼에 로망이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란 놈이 걱정도 안 하잖아. 이런 차림으로 학교에 가는데 아무런 걱정도 않고, 정말 이젠 곰탱이가 되버린 건가. 아니면, 혹시……, 성욕이 죽은 건 아니야? 안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잖아. 그래, 오늘 확인해봐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진수에게 다음 주에 만나자 약속하며 헤어졌다.




이준혁-4




“준혁 씨, 다음에 봐요.”




나는 차에서 내리려는 그녀를 붙잡아 키스했다. 그녀는 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팔로 내 목을 감았다. 끈적한 키스가 한참 이어졌다. 찬수와 같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합석해 그녀를 알게 된 지는 몇 시간이 되지 않았다. 이름은 수진이고, 나이는 24살이며, 한의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아무튼, 나는 지금 선을 침범했다. 아무리 결심을 굳혔다지만, 나 자신이 이 정도로 과감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지금까지 간직했던 내 모습은 결국 가식이었다는 결과가 나오자, 헛웃음이 났다. 웃으며 셔츠를 벗어 뒷좌석으로 던졌다. 시트를 뒤로 눕히고, 짐승처럼 그녀 위에 올라타 계속 키스를 이어갔다. 그녀의 손은 내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갔다. 그녀의 웃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애무하자, 유두가 딱딱하게 솟아나며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 순간 내 속의 대한민국의 법과, 관습과 가치들이 붕괴 되었다. 넘지 말아야할 강을 결국 넘어버렸다. 이성을 버리고 욕망에 몸을 맡긴다. 그러자 지금껏 참아오던 둑이 붕괴하니 열기가 확 치밀어왔다. 그녀의 치마 속에서 속옷을 찢어발기듯 내려버리고, 성난 페니스를 삽입했다. 대로는 아니지만, 도로변이라 누군가 지나가며 볼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일까, 움직이는 페니스를 그녀의 질이 수축하며 감겨왔다. 그녀의 신음과 나의 신음이 차 내부를 가득 채우고, 둘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 순간 전화가 왔는지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내였지만, 폰을 아예 꺼버리고 다시 몰두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의 손톱이 내 등을 찌르듯 압박하며 크게 신음을 내자, 나도 곧 사정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녀 위로 쓰러져 그녀와 키스를 나눴다.




“아우, 무거워요.”




나는 일어나 휴지로 몸을 닦고, 운전석으로 넘어갔다. 그녀도 몸과 치마까지 묻은 정액을 닦아내고 나서 날 흘겨보며 말했다.




“집이 근처 아니면 어쩌려고 이랬어요. 정말.”


“쏘리, 날이 따뜻하니 다음에는 야외에서 해도 괜찮겠네.”


“풋, 내가 말을 말아야죠.”




나는 그녀와 한 번 더 키스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 폭주하는 것처럼 위험하게 차를 몰았다. 그녀를 빠르게 보고 싶었다. 수진의 향기가 내 몸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녀에게 가기위해 액셀을 밟았다. 선을 넘은 순간부터 미쳐가기 시작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녀를 위한다는 가식이 내 욕망과 맞물려 날 짐승으로 바꿔놓았다. 과속딱지가 몇 장이나 찍혔을지 궁금할 정도로 내달려 집에 도착하니 그녀가 보였다. 난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 들어 침대 위로 던지고 올라갔다.




“자, 잠시만요. 우읍.”




얼마나 당황했는지 존댓말까지 하는 그녀의 입을 입술로 막아버리고, 내 옷을 찢어발기듯 벗어버렸다. 날 밀치려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는 그녀의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손안에 가득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에 죽어있던 흥분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은 많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순백의 실크 잠옷을 쉼을 주지 않고 벗겨 냈다. 이때껏 그녀와 섹스를 천천히 하던 나였기에. 또, 후각에서 느껴지는 다른 여성의 체취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설명도하지 않고, 우악스럽게 그녀를 애무했다. 입으로 이마에서 발끝까지 부드럽게 훑지 않고, 그녀가 아픔을 느낄 정도로 가슴을 깨물고 빨아댄다. 그러다 밑으로 옮겨 혀로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애무했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달짝지근한 신음이 들렸다. 지금껏 아내와의 섹스는 간단히 애무하다 정상위로 왕복하다 찍, 사정하며 끝내는 지극히 평범하게 행해졌다. 이렇게 그녀의 성기에 혀를 넣어 애액도 핥지 않았다. 그리고 애무하다 흥분으로 실핏줄이 돋아난 내 페니스를 상의도 없이 그녀의 입에 넣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의 머리를 잡아 일으켜 내 페니스를 그녀의 입에 삽입시켜 움직였다.




“아, 아, 콜록, 큽큽.”




흥분으로 인한 신음 속에 갑자기 터져 나온 기침이 섞여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페니스를 빼고 기침을 진정시킨 후에 그녀의 문을 찾았다. 얼마나 오랜만인지 페니스는 그녀의 문에서 몇 번 미끄러지다 들어간다. 그래, 이 느낌. 그동안 잊고 있던 그녀가 날 받아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도 다리로 내 몸을 감고,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지는 신음 속에 어둠은 점점 짙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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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흥분해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데 늦었다. 금요일이라고 늦으면 전화라도 하지, 놈이라고 저장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다 중간에 툭 끊겼다. 다시 전화했더니 이번엔 폰이 꺼져있었다. 내가 공주님처럼 오랜만에 순백의 실크 잠옷을 입고 기다리는데 정말 뭐하는 건지, 답답했다. 드라마가 끝나가고 열한 시가 넘어설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정말 단단히 혼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일어서 그에게 가려는데, 그가 갑자기 안아 들고는 안방으로 향해 침대에 날 던져버리고는 내 위에 올라탄다. 나는 당황해 겨우 말을 꺼냈다.




“자, 잠시만요. 우읍.”




한동안 쓰지 않던 존댓말까지 나왔는데, 그가 입술로 내 말을 막아버렸다. 그의 혀가 내 혀를 감싸며 엉켜 들었다. 그는 키스하며 알몸이 되었다. 아까 전부터 후각에 잡혔던 다른 여성의 향수와 체취가 그의 몸에 짙게 배 있었다. 압박하는 그를 밀치려고 했지만, 그는 한 손으로 밀치려는 내 손을 깍지 껴 막고, 다른 손으로 내 가슴에 파고들어 주물렀다. 이상했다. 당장 뺨이라도 때리고 어느 년이냐고 따져야 할 텐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내 잠옷마저 벗겨버리고, 내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짐승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년의 체취 속에서 애무를 당하니 꼭 쓰리섬을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섹스 판타지 없이 지극히 평범한 관계를 맺었었다. 그런데 다른 년의 체취와 그의 체취를 함께 그가 내 클리토리스를 애무하자 혼란한 생각과 상관없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흥분이란 파동이 물결을 타고 올 때, 그가 갑자기 페니스를 내 입에 삽입해 움직였다. 깜짝 놀랐다. 격한 흥분에 신음을 흘리던 그가 갑자기 멈추곤 기침을 했다. 기침은 오래가지 않고, 그는 곧장 나에게 삽입을 시도했다. 잠시 후에 그의 성난 페니스가 내 속에 꽉 들어온다. 흥분은 커지고 쫄깃한 젤리처럼 나는 움직이는 그의 상징을 감쌌다. 그의 왕복이 길어지며 나는 자연스레 다리를 올리고, 그의 움직임에 맞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사정하자, 묻어뒀던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잠시만, 오늘, 아.”




당연히 죽어서 멈출 줄 알았던 그가 금세 다시 부푼 성기로 내 속에 파고들어 왔다. 나를 가득 채우는 느낌에 할 말을 잊고 그를 안았다. 그리고 그날 몇 번의 오르가슴을 느꼈다. 섹스가 끝났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되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말없이 씻고 잠을 청했다.




그날 후로 남편이 밖에서 뭘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의 외박이 잦아져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나에게 점점 남편과 가정이란 의미가 지우개로 지우듯 희미해져 갔다. 오히려 다 잊어버리려고 나는 공모전에 집중해 글을 썼다. 그러면서 하진수와의 만남도 빈번해졌고, 편한 사이가 되었다.




하진수-5




공모전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를 본지도 두 달이 되어간다. 그녀를 올해 처음 봤을 때부터 시선이 계속 갔다. 지금이야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난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는 나와 별 차이 없는 줄 알았다. 나이를 알고 나서도 그녀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또래와 달리 편안함과 동시에 관능적인 매력에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이성으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본능은 그녀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술집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떨어진 구석진 곳을 선택했다. 자리에 앉아 한창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 그녀에게 게임을 권했다. 소설에 필요한데 잘 됐다며 흔쾌히 끄덕였다.




“바보게임인데, 이렇게 손가락은 3을 보여주면서 입으로는 3말고 다른 숫자를 말해야 해요. 그리고 상대방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손가락 숫자 3을 말하고, 손가락은 3말고 다른 숫자를 보여주면 돼요. 틀리면 상대방이 실수한 행동 따라 하며 바보, 바보라고 가리키면 돼요. 일단 몇 번 연습하고 해요.”


“으응, 손하고 반대로 말하면 되네.”




그녀가 바보게임을 이해할 때까지 두 번 연습을 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내기는 필수지.




“게임이니 내기는 있어야겠죠? 세 번 먼저 틀리는 사람이 상대방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매일 글쓰기에만 몰두하는 그녀를 보니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 좀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근데 그녀가 내기를 받아들일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풋, 이길 거라고 확신하나 봐? 내가 이긴 후에 뭘 말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허락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고, 내가 먼저 시작했다.




“2!”




손가락은 네 개를 펼쳤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4!”




그녀의 오른 손가락은 네 개가 펼쳐져 있었다. 곧바로 그녀도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닫고는 입을 막고 말했다.




“어, 이게 아닌데.”


“어, 이게 아닌데. 바보, 바보.”




난 그녀 모습과 똑같이 입을 막고 말했다. 그리고 바보, 바보라며 그녀를 가리켰다. 그녀는 약 올랐는지 날 흘겨보며 말했다.




“이젠, 안 봐 줄 거야.”




그리고 시작된 게임에서 나도 한 번 실수했다. 그 후엔 이기기 위해 집중해서 했는데, 곧바로 그녀가 연달아 실수해 쉽게 끝나버렸다.




“뭐야, 이거 너무 어렵잖아. 칫.”




그녀가 투정을 부렸지만, 내기는 내기.




“내기는 제가 이겼으니, 말할게요.”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속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다.




“누나 좋아해. 그러니 일 분간 가만히 있어줘 그게 내 소원이야.”




난 말을 끝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뽀뽀했다.




송미진-5




진수와 몇 번 술을 마셨지만, 오늘은 그가 좀 이상했다. 칸막이로 나뉜 술집을 골라서 다른 사람들과는 떨어진 곳에 앉더니, 게임까지 하자고 하다니.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창한 내기였지만, 재밌을 것 같아 허락했다. 바보게임을 그에게 처음 들었을 때는 쉬울 것 같았지만, 막상 연습을 해보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누나의 자존심이 있지. ‘이겨서 녀석의 높은 콧대를 낮춰주마’라고 자신 있게 시작했지만, 내 손과 입은 정말 바보가 된 것처럼 움직였다.




“뭐야, 이거 너무 어렵잖아. 칫.”


“내기는 제가 이겼으니, 말할게요.”




진수가 자리를 옆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그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누나 좋아해. 그러니 일 분간 가만히 있어줘 그게 내 소원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닿은 진수의 입술이 느껴졌다. 바로 밀쳐야 하는데 뽀뽀만 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다가 일 분이 지날 즘에 그를 밀쳐냈다.




“일 분 끝났어.”




진수의 볼은 술기운인지 몰라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왠지 풋사과 같은 그의 모습에 유쾌했지만,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진수가 입을 열었다.




“누나에게 한눈에 반했어요.”


“그게 지금 무슨 말인지 알고 있지? 내가 결혼한 거 알고 있잖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이 가슴이 멈추질 않아요. 누나의 미소와 선홍빛 입술, 깊은 눈동자, 세심한 손짓까지 누나의 모든 모습에 제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요. 자 보세요.”




진수는 내 손을 잡아 그의 심장에 가져갔다. 두근거리는 그의 심장 박동이 큰일 난 것처럼 빠르게 뛴다. 그의 뜨거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아직 예뻐?”


“네, 제가 한눈에 반해버릴 정도로요.”




진수의 눈동자와 목소리를 통해 그의 진심이 전해진다. 그의 뜨거운 열기에 내가 타버릴 것만 같았다. 내 몸이 달아올랐다. 나는 입을 열어 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아, 그리고 손은 가만히 있어.”




잘게 떨고 있는 감긴 눈 위에 키스를 하고 내려와 그의 닫힌 입술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혀는 곧장 감겨들어 온다. 키스하며 오른손으로 그의 몸을 살며시 훑었다. 가슴부터 내려와 허벅지에서 맴돌다 안쪽으로 들어가 팽팽하게 부푼 바지 위로 장난치듯 손가락으로 그를 놀렸다. 애달픈지 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바지 자크를 내려 그의 페니스를 움켜잡으니 움찔한다. 둘만의 공간이 아닌 누군가 볼 수도 있는 공간에서 그의 페니스를 움직였다. 키스만으로도 내 몸이 달아오르고, 신음이 살짝 나온다. 순간 그의 페니스가 부풀며 정액을 가득 쏟아내었다. 키스를 마치고, 휴지로 손에 묻은 정액을 닦아냈다. 안주도, 술도 아직 남았지만, 우리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제, 오피스텔로 가요.”




진수는 나를 끌고 그가 자취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그의 집은 금세 도착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멈췄던 키스를 이어갔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정열적인 키스를 하다 가슴에 닿는 손을 느꼈다.




“그건 아직 안돼.”




진수의 손을 잡아 내리고 그를 침대에 눕혔다.




“눈을 감아봐. 손수건 벗으면 안 돼. 그러면 끝이야.”




나는 진수의 눈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겉옷을 벗은 채 그에게 안겼다. 내 몸이 닿자 그의 몸이 움찔한다.




“네 알겠어요.”




강아지처럼 복종했다. 진수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탄탄한 가슴을 쓰다듬었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의 체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불안함은 없었다. 한 달 전 남편과의 섹스에서 다른 여성의 체취를 느낀 그 순간부터 닫혀있던 내 몸이 열렸기에 거침없이 진수의 옷을 벗기고 가슴을 혀로 애무했다. 참기 힘든지 그의 손이 꼼지락거린다. 가슴을 타고 내려와 그의 바지를 벗기고 튀어나오는 페니스를 삼킨다. 그의 신음이 절정에 오른다. 참지 못한 그는 입안 가득히 정액을 쏟아냈다. 정액을 휴지에 뱉어내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입을 물로 헹구고 그를 가만히 보았다. 죽어있던 그의 페니스가 어느새 커져 있었다. 풋, 역시 젊으니깐 좋네. 의자에 앉아 그를 혼자 내버려두니 결국 못 참고 손수건을 풀었다.




“뭐야, 손수건 풀면 끝이라고 했지? 자, 이제 끝!”


“그러는 게 어딨어요.”


“여기 있다.”




이불로 휙 던져 진수를 덮었다.




“나오지 마. 옷 입을 거니깐.”




진수를 약 올리며 옷을 들었을 때. 이불에서 나온 진수가 날 꽉 안았다.




“안 놓아 줄 거야. 그러니 도망치지 마.”




진수는 말을 하며 내 몸을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가 내 속옷을 벗긴다. 알몸이 된 내 위로 그의 뜨거운 몸이 포개졌다.




“누나, 아름다워요.”




진수는 말과 함께 날 얼굴부터 먹기 시작했다. 이마부터 시작해 눈, 코, 귀, 입까지 그의 입술과 혀가 화장을 깨끗이 지워갔다. 그는 곧 가슴을 지나 발가락까지 온몸을 애무했다. 그의 입술과 혀가 닿는 곳이 간질거린다. 나는 그를 껴안고 키스했다. 지금까지의 키스는 키스가 아닌 것처럼 그를 빨아들였다. 그의 손이 내 속으로 들어와 클리토리스를 애무한다. 촉촉이 젖어들고, 달 뜬 신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참지 못한 나는 입을 열었다.




“빨리 안아줘.”




진수는 날 안고, 천천히 들어왔다. 남편이 아닌 다른 이의 페니스가 들어온 순간. 난 쾌락에 몸을 맡겼다. 그의 몸을 꽉 안고 그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움직였다. 흥분은 발가락에서부터 키스하는 입술, 감긴 두 눈까지 전해졌다. 진수의 움직임에 나는 그와 하나가 되어갔다. 진수는 지금껏 참아왔던 것을 이번에 모두 내뱉듯 끝없이 내 몸에 사정했고, 나도 무엇을 갈망하듯 쉼 없이 그를 쥐어짰다. 밤늦게 시작된 섹스는 캄캄하게 물들고, 여명에 밝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떨어진다. 이번엔 정말 끝이겠지? 밤새 시달려서 그런지 몸이 나른했다. 일어나 엉기적거리며 화장실로 가 몸을 씻었다. 따뜻한 물이 닿자 그에게 시달린 클리토리스가 따끔거린다. 몸을 씻고 나가니 진수가 물을 마시며 흔들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이네요.




“힘들다, 젊으니깐 무서워서 두 번은 못하겠다. 나도 물.”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섹스 한 번 가지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 부담가질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너도 좋았던 만큼 나도 좋았으니깐 그걸로 됐어.”


“누나랑 아니, 너랑 같이 살고 싶어.”


“얘가, 큰일 날 소릴 하네. 여우라고 손가락질 하겠다. 대학교 계속 다녀야지. 그냥 이 정도면 돼. 딱, 이 정도만. 이만 가봐야겠다.”




진수와 모닝 키스를 진하게 나누고는 헤어져 베니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준혁-6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처음으로 섹스한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마무리하기 전 나를 위해 아내를 위해 서른다섯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몇 달 다니다 말았던 내가 한 달 정도 만에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강사는 1층에 카페를 같이 하고 있었다. 소박한 인테리어 속에서 은은한 불빛이 따스함을 주는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배우고, 한 달 뒤에 1층 카페에 있는 피아노에서 연주하기로 강사와 얘기를 마쳤다. 그는 음악이 좋아서 배우는 이들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의 결심이 전해졌는지 그는 마음 단단히 먹고 따라와야 할 거라며 말했다.




‘드라마에서 프러포즈하는 것처럼 피아노 치며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첫 레슨시간 그렇게 말했다. 드라마에서 피아노를 치며 고백하는 모습처럼 지금껏 악기를 다루며 연인에게 노래 불러 주는 모습을 얼마나 부러워했는가. 예전부터 악기는 하나 다루고 싶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양쪽 손을 따로 놀리며 어떻게 동시에 치는지. 처음엔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양손은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왼손은 베이스음을 치고, 오른손은 코드를 잡아가며 반주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온종일 피아노만 치다 보니 실력은 점점 늘었다. 잊기 위해서라도 미친 듯 피아노를 쳤다. 그러다 보니 한 달이 지날 즘에는 원하는 발라드를 건반을 보지 않고 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강사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공모전이 끝나는 주말에 정장을 차려입고, 오랜만에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중요한 말이 있으니 같이 가자.”


“뭔데 그래, 그냥 여기서 하지?”




퉁명스러운 아내의 말에 오랜만에 사정해 겨우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시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몇 달 만에 많이 바뀌어있었다. 그녀에게 정말 좋은 쪽인지는 나로선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는 정말 아줌마로 못 보겠네.”


“이제야 정신 차렸어?”


“그러게 옛날 그때 그 모습이 생생하게 들어와서, 기억을 잊어버려도 너에게 다시 빠질 것만 같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니 그녀의 입장에서도 당황 할 만 했다. 나온 커피를 마시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자리에 앉아 봐줘, 너에게 한 번쯤은 해주고 싶었는데 오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말을 마치고 중앙에 있는 피아노로 걸어갔다. 오늘은 왠지 몸이 좋아서 다행이다. 연주를 마치기까지 기침이 안 나오길 빌었다.




송미진-6




카페로 끌고 와서 이제야 좋은 소리 한다고, 봐줄 줄 알고? 정장 차림인 그 때문에 나도 어깨가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나섰지만,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묵묵히 커피만 마셨는데, 커피를 마시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 자리에 앉아 봐줘, 너에게 한 번쯤은 해주고 싶었는데 오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는 말을 내뱉고는 피아노에 앉았다. 피아노라니?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을 텐데.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이 건반에 내려앉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움직이며 익숙한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잘 치잖아, 언제 배운 거야? 당장 그렇게 묻고 싶었다. 반주와 함께 그의 입이 열린다. 부드러운 노래가 귀를 간질인다. 그의 목소리로 성시경의 [너에게]가 들려왔다.




사랑스런 너의 눈을 보면


내 맘은 편안해지고 네 손을 잡고 있을 때면


'난 이런 꿈을 꾸기도 했어'




나의 뺨에 네가 키스할 땐 온 세상이 내 것 같아


이대로 너를 안고 싶어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일이 네 앞에 버티고 있잖아




생각해 봐 어려운 일 뿐이지


네가 접하게 되는 새로운 생활들과


모두가 너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는 걸 알 수 있니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조그마한 너의 마음 다치게 하긴 싫어


이러는 것 뿐이지




어른들은 항상 내게 말하지


넌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일이 더 많다고


네 순수한 마음 난 변치 않길 바래




짜증나던 감정이 노래에 희석돼 잊혀간다. 노래가 끝나고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그 감정을 참지 못해 일어나 그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돌았다.




“풀릴 때까지 마음껏 때려.”




‘못 할 줄 알고?’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짝. 반대쪽 뺨도 때렸다. 그의 고개가 반대로 돈다.




“말해, 이제껏 왜 그랬는지.”


“다 말해 줄 테니 나가자.”




그가 나를 끌고 차로 갔다. 그는 말없이 차만 운전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잠시만.”




그는 계속 달려, 바다가 보이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콜록콜록, 큽큽, 휴, 또 시작이네.”




창밖으로 가래를 뱉으며 담배를 꺼냈다.




“또 담배야?”


“미안, 진작 끊었어야 했는데. 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담뱃갑을 꾸겨 버리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말없이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카페에서 불러 준 노래. 마지막으로 부르는 프러포즈야.”


“프러포즈에 마지막이 어딨어?”


“실은 끝까지 나쁜 놈이 되려고 했는데, 얼마 후에는 널 보지 못한다니, 다시 고백하고 싶었어.”


“……돌리지 말고 말해.”


“폐암 말기야.”




그의 말에 이제는 당황할 일도 없을 것 같았는데, 충격과 함께 몸이 떨렸다.




“장난치는 거지? 내가 쓴 소설 몰래 봤구나. 네가 한동안 짜증나게 굴어서 남편 죽인 거야. 그건 소설이지, 내가 진짜 그러겠어?”


“정말이야. 미안하다. 미진이 지금 네 모습이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러지 마, 그러지 말라고......흑, 흑.”




그동안의 감정들이 뒤죽박죽 섞여 밖으로 토해졌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끝없이 내린다.




그와 그녀-0




이준혁은 멀쩡한 집을 놔두고 고시텔에 묵고 있었다.




“대체 여기서 뭐한 거야? 아픈 몸으로, 당신 바보지?”


“기침을 계속하다 보니 들킬 것 같아서.”


“옷 따뜻하게 입어 어서 집에 가자.”


“알았어. 잠시만, 이것 좀 가지고 가자. 어제 천원가게에서 샀는데 쓸만해.”


“정말! 휴……, 알았으니 내가 챙길게. 이거, 이것도? 이건 또 뭐야.”




송미진은 한숨을 쉬며 방을 둘러보았다. 한 달밖에 안 된 방에서 뭐가 그리 많이 나오는지 한 손은 여행 가방을 끌고, 한 손은 봉지에 잡다한 걸 가득 담아 낑낑대며 짐을 옮겼다.




“무겁지 않아? 내가 들을게.”


“당신은 가만히 있어. 집에 가면 혼날 줄 알아.”




미진은 준혁을 태우고 집에 도착했다. 짐을 정리하고 돌아서니 멀뚱히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준혁이 있었다. 그녀는 짝. 시원하게 뺨을 갈겼다.




“윽, 또.”


“이건 그동안 날 걱정시킨 죄. 그리고 이건 그동안 내가 잘못한 죄.”




미진은 남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키스한다. 준혁은 그녀를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꽉 껴안았다. 미진은 그와의 키스를 끝내고 말을 툭 내뱉는다.




“이제,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러 가면 되지?”


“뭐? 뭐라고?”


“뭘 놀라. 영계 잡아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그렇게 하라며.”




미진은 아무 말도 못하는 준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동안 어떻게 연기했어? 정말, 남우주연상감인 걸?”


“정말 미안해, 콜록.”


“말 많이 하지 마. 난 바보니깐, 나중엔 다 까먹으면 당신보다 잘난 놈 만나 결혼 할 거야 그러니 저번처럼 다른 년한테 못 보내. 나도 안 할 거니깐......”




미진의 목소리가 끝에서는 소곤대듯 줄어들었다.




“그래 알았어.”


“이제부터 넌 내꺼니까. 내말대로 해야 돼. 침대에 누워있어.”


“벌써 환자 취급이야?”


“환자 맞잖아. 어서 들어가,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소고기니깐.”




준혁이 안방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미진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네 옆에 항상 있을 테니 네가 원하던 거 다하러 가자.”




그렇게 그와 그녀의 로맨스가 시작되었다. 하루를 일 년 같이. 소중한 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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